본문 바로가기
문화생활/책

파트리크 쥐스킨트 - 깊이에의 강요, 무신경하기란 너무 힘든일이지

by Georzi 2016. 2. 18.
반응형

 

한유진의 깊이에의 강요 애니메이션 중 발췌

 

 

주변에는 흔히 '마이웨이'를 걷는 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사람들의 평가는 신경쓰지 않은채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그런면에서 생각해보면 예술가라는 집단은 '마이웨이'와 '주위의 평가' 모두 신경을 쓰는 모순적인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이런 모순들을 정확히 파고든다. 짧은 호흡의 문장들은 어느새 독자들의 머리를 내려치는 망치가 되어버린다. 바로  장편소설 '향수'로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이다.

 

은둔자의 통찰력


 

파트리크 쥐스킨트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로 유명한 작가이다. 이 사진 외에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조차 없다. 세계적인 유명한 작가임에도 수상내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수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깊이에의 강요'에 대한 실천을 하고 있달까. 은둔하며 살아도 현실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력은 현대 그 어느작가보다 돋보인다. 오히려 은둔자 이기 때문에, 세상과 삶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가 더 객관적 통찰력을 가질런지도 모르겠다.

 

 

 

 

 

 

단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는 예술가의 천성


 

'깊이가 없어 깊이가'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을 접했을 때, 이말 보다 더 본인을 높이며 예술가를 깎아내리는 재치있는 동시에 악의적인 말이 존재할까? 고흐도 평단의 비판에 나날이 괴로워했다. 고흐의 사후에 고흐는 세계미술사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 되어버렸지만, 소위 예술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한마디는 작품하나에 모든 것을 쏟은 예술가들을 깊은 수렁에 빠트린다.

늘 자신만만하던 여주인공은 한 평론가의 '깊이가 없다'는 말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무던히 노력하지만 이미 그녀의 예술가적 기질은 악과 독으로 사라진지 오래이다. 아니, 그녀 스스로 그렇게 느끼게 되어버렸다. 평론가의 '촌철살인'의 한마디. 그 야박한 평가는 정말로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깊이에의 강요


 

그녀의 사후, 그녀는 마치 고흐와 같은 평가를 받는다. 그녀의 작품에는 깊이가 있었다는 그녀가 생전이 그토록 갈구했던 말과 함께.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예술작품이라면, 인류를 위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너무 비참하다. 제3자의 악랄한 깊이에의 강요 때문에 (깊이가 어떤 깊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술가들에게 깊이를 강요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예술가가 될만한 천성이나 자질은 존재하지 않지만 내가 그런 상황에 빠졌더라면 매일 좌절과 눈물의 나날을 지냈을 것 같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문단의 어떤 평가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이 깊이에의 강요는 동업자 정신을 발휘해 평가에 괴로워 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변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반응형

댓글